
주의력이 자원인 시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바쁨'이 곧 생산성이라는 오해가 통념처럼 여겨지게 됐다. 십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딥 워크는 디지털 시대의 주의력 위기를 다룬 책이다. 출간된 지 이제 9년이 됐다. 저자 칼 뉴포트는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학자라 한다.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보유한 작가로 다른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도 유명한 듯하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피상적 작업을 멀리하라고 제안한다.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의미없이 소모되고 있고, 그에 따라 실질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깊이 있는 업무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해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의도적, 의식적으로 딥 워크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안주한다면 사고력과 창의성은 점점 퇴화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딥 워크란 무엇인가
저자는 그러한 시점에서 '딥 워크'를 제시한다. 딥 워크란,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깊은 사고와 인지 능력을 발휘하는 작업에서 특히 요구되는 능력이다. 주의가 끊임없이 분산되고 표면적인 정보만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 현대 사회에선 점점 더 희소해지는, 그리고 가치 있어지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딥 워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행위다. 딥 워크를 위한 환경을 세팅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깊이 있는 업무에만 몰입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특정한 장소를 정해 그곳에서만 딥 워크를 시도할 수도 있고, 매일 일정한 시간대를 설정하여 방해 요소 없이 집중하는 방법들도 있다.
딥 워크는 단지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자세라는 설명이다. 그저 더 빠르게 일하고 더 많이 성과내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거다. 딥 워크를 실천하면 본질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사고와 몰입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더 큰 성취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주장한 몰입(flow) 개념을 인용하며, 딥 워크 상태에서 인간은 가장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몰입이란 완전한 집중을 통해 외부의 방해 요소를 모두 잊을 수 있는 상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거나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 작업 자체가 즐거워서 다른 보상이 없어도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렇게 하면 '효율적인' 단계를 넘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장기적으로 볼 때, 딥 워크를 꾸준히 실천한 이들은 그들의 분야에서 차별화된 성과를 내며, 궁극적으로는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조앤 롤링, 카를 융처럼 말이다(저자가 예시로 드는 딥 워크 실천가들이다). 깊이 있는 몰입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말한다.
일상에서의 딥 워크
딥워크를 일상에 접목하는 방식은 네 가지로 나뉜다. 가령 수도원 방식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완전한 고립 상태에서 집중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의 '생각하는 주간'처럼 특정 기간 동안 외부와 단절하고 딥워크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을 딥워크와 일상적인 업무로 명확히 구분하는 방식도 있다. 주 4일은 딥워크, 3일은 일상 업무를 하는 식이다. 좀 더 일반적인 방식도 있다. 매일 일정 시간을 딥워크에 할애하는 방식으로,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를 딥워크 시간으로 정하는 식이다. 자기 통제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투리 시간을 자주 활용하는 방식도 좋다. 불규칙한 일정을 소화할 때도 틈틈이 집중해서 작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딥워크를 시작하기 전에는 특별한 의식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차나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시작하거나, 특정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는 등의 어떤 신호를 만드는 것이다. 루틴이 되게 하면 더 쉽게 집중 상태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연락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그게 어렵다면 특정 시간대만이라도 메시지 확인을 제한하는 식으로 실천할 수도 있다. 딥워크를 위한 4DX 방법론 같은 것들도 소개된다.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하나 선택하고, 이 목표가 다른 모든 일보다 우선시되도록 의식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이다. 매일 몇 시간 동안 딥워크 상태에 있었는지를 기록하고 점검하면 된다.
시간 통제를 통한 딥워크 실천법
현대인의 시간은 끊임없는 방해와 산만함에 노출되어 있다. 자기계발서답게 이 책도 시간 관리법을 강조하는데, 분 단위로 계획하라는 조언이 인상적이다. 깊이 있는 작업을 위한 토대라 설명한다. 예컨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11시부터 11시 20분까지는 이메일을 확인하는 식의 디테일한 계획이 필요하다. 20분의 행방마저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밀한 계획을 세우면 피상적 작업에 새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피상적 작업이란 고도의 인지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산만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반복적인 작업을 뜻한다. 혁신이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도, 성장을 돕지도 않는, 누가 대신 해도 상관없는 업무들이다. 가령 이메일 답변, 기계적으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작업, 명확한 목표 없이 진행되는 '회의를 위한 회의', 이미 완료된 문서를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등의 '작업을 위한 작업' 같은 것들. 저자는 이것들을 시간을 좀먹는 주범이라고 본다. 이런 작업들은 차라리 한데 묶어서 처리하라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 전후로 30분씩을 피상적 작업 시간으로 정해두고, 그 시간에 메일과 메신저를 몰아서 확인하는 방식이다. 한 번에 해치우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한 저자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저자는 오후 5시 30분 이후로는 업무를 안 하기로 결심하고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박사 학위를 받고 책을 쓰고 논문을 발표하던 동안에도 지켜진 원칙이었다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데드라인들 정해 시간에 쫓기게 하면 더 긴박하게 집중하게 되고, 중요한 일에만 매달리게 하게 되어 자연스레 피상적 작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일찍 퇴근했을 때 저녁 시간을 온전히 휴식과 재충전에 쓸 수 있어 다음 날의 딥워크에도 도움이 된다. 남는 시간을 자기계발이나 취미, 가족관계에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조언들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보내고 느슨하게 일하면서 일하는 시간만 늘리기보다,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일하고 주어진 시간을 풍성하게 쓰라는 것이다. 시간을 도둑맞은 것처럼 보내지 말고 집중을 통해 같은 시간도 더 길고 촘촘히 보내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도 연결된다. 끊임없는 자극과 피상적인 재미를 쫓을 것인가, 아니면 깊이 있는 사고와 진정한 만족감을 추구할 것인가.
인터넷은 도구여야 한다
한때 멀티태스킹이 현대인의 미덕이나 대단한 묘기처럼 비춰지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수 있다는 둥 ADHD라는 둥 조심해야 할 행동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됐던 시기에도 그런 풍조가 남아 있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멀티태스킹이 나쁘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다만 지금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주의력을 뺏길 곳이 너무 많은 나머지 도파민을 위한 멀티태스킹을 하는 현대인들이 많아졌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켜고, SNS를 확인하고,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이 책이 나오던 시절에는 4분, 20분짜리 유튜브를 봤지만 요즘은 1분 미만의 숏폼 시장이 훨씬 커졌다. 2분짜리 영상도 길다고 느끼는 이 시점에서 무료함과 친해지라는 저자의 조언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재미를 위한 인터넷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하라고 말한다. 숏츠 보기, 릴스 넘기기, 디엠 확인하기 같은 행위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런 행위들은 즉각적으로 랜덤한 보상을 주기 때문에 인간을 너무나도 쉽게 길들이고, 중독시킨다. 인터넷은 숙련자가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여야 한다고 본다. 대신 독서, 산책 같은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가지라고 권한다. 이런 활동들은 인터넷만큼 자극적이지 않기에 습관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실 인터넷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주고, 보상 체계를 건전하게 만든다. 하루 중 특정 시간에만 인터넷을 사용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인터넷 안식일'로 지정해 완전한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자꾸 생각나겠지만, 그 구간을 참는다면 산만한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 준다. 나의 경우 한 달 전에 이런 말을 봤다면 비현실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2주일 째 인터넷 제한을 실천하고 있는 시점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구절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살아가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집중력은 점점 더 조각나고 있다. 책에서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정보만 소비하는 걸 우려하는데, 사실 그마저도 문해력 부족으로 긴 글을 읽기 어려워 하는 사람이 많다. 작금의 세태에서 소셜 미디어를 끊고 깊이 있는 사고에 전념하라는 등의 저자의 주장은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가르침은 수용하기 쉽다. (고품질 작업 성과) = (투입 시간) × (집중 강도). 시간을 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 몰입하라. 집중하는 훈련을 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라. 알고는 있지만 체화되지 않은 진리들을 되새기기 좋은 책인 것 같다.
최근 나도 책의 제안대로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여 보았다. 예전엔 번번이 실패했었다. 인터넷 창을 꺼야 한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의식 저편으로 밀어 둔 채, 뚜렷한 목적 없는 클릭 혹은 터치를 이어갔다. 그럴 때는 거의 무아지경이다. 그러고 잠이 들 때가 되면 후회한다. 물 쓰듯이 (사실 요즘 세상에서 물도 그렇게 막 쓰진 않는다) 써버린 시간들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성공적으로 작심삼주를 향해 가고 있다. 인터넷은 도구로써만 이용 중이다. 이러다 또 실패한다면 더 강하게 꾸짖어 줄 자기계발서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몰입하는 건 어렵게 느껴진다. 깊이 있는 몰입이라는 개념이 신기루같이 느껴진다. 금세 시간이 휙휙 지나 있고 허리가 아파오는 걸 보면 어쩌면 몰입은 하고 있는데 몰입 대비 성과가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생산성 영역의 좁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더 만족스럽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중요하다는 것 같다. 수레바퀴는 고귀하지 않지만 수레바퀴를 만드는 과정은 고귀할 수 있다는 말처럼. 자기 일에 장인처럼 몰입하는 삶의 자세 자체를 목표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