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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형 두뇌 활용법 요약 | 수포자에서 공학계열 교수가 되기까지

by 비비자 2025. 2. 5.

책 '이과형 두뇌 활용법' 표지

 
 
 

저자도 수포자에서 시작했다

수학 공부가 적성에 안 맞다고 느껴 본 사람은 꽤나 많을 것이다. 한국 고등학생 중 수학에서 기초학력 미달 점수(100점 만점에 20점 기준)가 나온 학생은 16%라고 한다. 스스로가 수포자를 자처하는 학생은 그보다 높은 비율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학업 성취도가 OECD 중에서도 높은 편이라는 걸 감안하면 미국(저자가 미국인임)은 더 심할 테다. 저자 바버라 오클리는 어릴 때 수학과 과학을 가장 못하는, 낙제점을 받는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오클랜드 대학교의 공학부 교수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를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춘 학습법을 개발하면서, 수학 혐오자에서 수학 애호가로 극적인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통찰들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뇌의 작동방식: 집중모드와 분산모드의 교차점

인간의 뇌는 두 가지 모드로 작동한다. 하나는 레이저처럼 정밀하게 초점을 맞추는 집중모드고, 다른 하나는 손전등처럼 넓게 퍼진 빛을 비추는 분산모드다. 저자는 두 가지 모드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효과적인 학습의 비결이라고 소개한다. 집중모드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필요로 할 때 활성화된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하는 고도로 집중된 상태다. 수학 문제를 마주하고 그걸 해결하려고 애쓰는 순간이라든가. 이때의 뇌는 기존에 알던 패턴을 따라 순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반면 분산모드는 휴식 상태에서 작동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 생성에 도움을 준다. 샤워를 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통찰이 바로 이 모드의 산물이다. 에디슨은 분산모드 활용의 귀재였다고 한다.
고도의 집중이 때로는 실수를 유발하기도 한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좁은 초점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일부 조건을 놓치거나, 잘못된 가정을 기반으로 계산을 진행하는 경우도 흔하다는 거다. 가령 지구의 원주가 76cm라는 계산 결과를 얻는 식의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집중모드는 결과를 고수하려는 욕구를 가졌기 때문이다. 집중한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분산모드로 전환해 한 걸음 뒤에서 보면 화들짝 놀라곤 하는 경우다.
이 두 가지 모드를 번갈아 사용하면 시너지가 생긴다. 집중모드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분산모드에서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잠시 산책을 나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분산모드에서 우리 뇌는 더 자유롭게 생각을 이어가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많은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했다고 한다. 고도의 집중 작업 후에 의도적으로 휴식을 취했고, 그 시간 동안 뇌가 알아서 정보를 재배열하고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어려운 무언가(퍼즐 등)를 풀려고 할 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잠시 다른 일을 하면 답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참고로 동시에는 사용할 수 없다. 가령 집중을 하다가도 눈을 몇 초간 감고 있으면 분산모드로 전환될 수 있다.

 

효과적 학습: 정보 덩어리 만들기

정보 덩어리는 복잡한 정보를 더 작고 다루기 쉬운 단위로 나누는 인지 과정이다. 정보 덩어리를 잘 만들면 작업 기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작업기억이 4개라면, 특정 정보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더 큰 정보량을 한 개의 덩어리로 묶을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수학 초심자는 일의 자리 덧셈마저도 하나의 덩어리로서 하나의 작업기억을 할애해야 하지만, 수학에 능숙한 사람은 전체 연산을 하나의 덩어리로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익숙하고 만만한 정보는 사고 공간을 덜 차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초보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이유다.
덩어리를 만드는 과정은 세 단계로 이뤄진다. 우선 집중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다음 기본 개념을 이해하며, 마지막으로 분산모드를 이용해 큰 그림을 보고 맥락을 파악해 언제 활용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벽돌을 쌓는 것으로 비유한다. 집중모드로 벽돌 자체를 만들고, 분산모드로 그걸 쌓아올리는 식이다. 강력한 정보 덩어리 만들기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핵심 문제 하나를 종이에 끝까지 풀기(완벽하게 풀기도 전에 ‘아 알겠다’하고 그만두는 행위 금지) -> 문제를 다시 반복해서 풀되, 핵심 과정에 집중하기 -> 휴식: 분산 모드에서 내면화 -> 잠자기: 자기 전에 문제 다시 한번 풀기 -> 다시 풀기: 바로 다음날 문제를 다시 한번 푼다. 가장 어려운 부분에 의도적으로 집중해서 -> 새로운 문제 추가: 다른 핵심 문제를 골라 동일한 과정 반복 -> 다른 활동을 하면서 상기하기(육체적인 활동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핵심 문제 해법 복습하기 등)
 
 

다양한 학습 스킬의 활용

책에서 추천하는 포모도로 기법은 25분간 집중하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포모도로 세션이 끝나면 꼭 보상을 주어야 한다. 정말 즐거운 작업이 아니라면 작업 시간을 짧게 유지하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어차피 휴식 시간에도 분산모드가 학습을 돕고 있을 테니까. 기억의 궁전 기법은 정보를 시각적 이미지와 공간에 연결해 기억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원시인 시절이 길었어서인지 명칭이나 수치보다 공간에 대한 기억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집이나 떠올리기 쉬운 장소를 시각적인 메모지처럼 활용하면 된다. 가령 마트에서 살 식품을 기억한다고 치면, 의자 위에 거대한 우유병을 놓고, 화장실에 빵을 놓아 두는 식으로 생생하게 상상하면 된다. 처음 구축할 때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강력한 기억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학습할 때는 꼭 눈을 감고 배운 내용을 상기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정보를 회상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가벼운 인출하기라고 할 수 있다.(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에도 등장한 개념이다) 잠도 학습의 중요한 요소다. 자기 직전에 공부하면서 그 주제로 꿈을 꾸고 싶다고 마음먹으면 좋다. 수면은 중요한 정보는 강화하고 불필요한 것은 걸러내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공부한 내용은 잘 기억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쉽게 잊혀진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억 향상 기법들이 있다. 비유와 은유를 활용하기, 시각적 이미지로 상상하기, 암기용 억지 문장 만들기, 노래로 만들어서 외우기 등이다.
 
 

학습자의 마음가짐과 태도

학습할 때의 마음가짐이 배움의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가장 중요한 건 성장할 수 있다는 마인드셋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재능 유무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대신, 노력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23세까지 어학 전공의 수포자로 살았으나 지금은 공학 교수로 하이브리드형 역량을 갖추게 된 저자처럼 말이다. 저자는 특히 수학과 과학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 적절한 학습 방법만 있다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분야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재능의 영역으로 생각되기 쉬운 공간지각력도 발전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천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타고난 작업기억이 더 뛰어나거나 투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창의력은 그런 것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지 통제가 너무 강하면 기존 정보에 집착해서 새 생각이 쉽게 비집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만과 착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집중모드에 맹점이 존재하듯이, 자신의 두뇌를 100% 활용한 상태가 실수에 취약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타인과 교류하려는 태도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의 브레인스토밍은 뇌 밖에서 일어나는 분산모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닐스 보어와 파인먼의 사례처럼, 서로 비판적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지금 열정을 갖고 있는 분야와 아닌 분야를 나눠 그것이 평생 갈 것이라고 믿는 건 허구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이 잘하는 것에 열정을 갖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 열정이 없더라도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특히 21세기에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를 갖추고, 시험 성적이나 외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도를 정직하게 점검하며,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과형? 두뇌 활용법

책 제목에 다소 충실하지 못한 것 같은 면도 있다. 수학과 과학에 특화된 내용이라기보다 대부분 일반적인 학습 전략에 가깝다. 수학과 과학 분야의 구체적인 예시가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인간의 학습 과정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기억과 학습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실용적인 조언으로 풀어낸다. 인간의 뇌가 지닌 특성과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효율적으로 지식을 구조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특히 집중모드와 분산모드의 개념, 정보 덩어리 만들기, 실수와 실패를 통한 학습 등은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준다. 한 챕터를 볼 때마다 읽은 내용을 상기하기를 요구하는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책을 다 읽을 무렵에는 어느 정도 습관화가 되어 있게 돕는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저자의 삶의 행적일 것이다.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 공학 박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수학과 과학은 타고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수는 예이다. 선천적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방법론의 문제라는 걸 보여 준다. 취미로라도 수학을 조금씩 공부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