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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방법

by 비비자 2025. 1. 24.

책 '팩트풀니스' 표지

 

 

 

세상을 오해하는 법, 그리고 오해하지 않는 법

이 책은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의 유작이다. 빌 게이츠가 (2018년에) '가장 중요한 책, 세계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라고 극찬하며 미국 내 대학생들이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기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팩트 기반의 관점을 갖춰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13개의 퀴즈가 언급된다. 이를테면 "오늘날 저소득 국가 여자아이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몇 퍼센트일까?"라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문제의 답을 20~40% 정도라고 추측하더라는 거다. 실제로는 60% 이상이(최근 통계로는 70% 이상) 학교에 다닌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그간 사람들이 세상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 열 가지 본능에 대해 설명한다. 그 본능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가르쳐 준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예컨대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공포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차분히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속이는 본능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자

저자가 소개하는 본능들을 세 갈래로 묶는다면 그중 첫 번째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발전을 부정하며, 변화를 단순히 직선적으로만 바라보려는 경향들일 것이다.
간극 본능. 세상을 단순하게 '우리와 그들'로 나누려는 성향을 말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부자와 가난한 자'처럼 극단적인 두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이분법이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중간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빌 게이츠도 언급한 부분인데, 이 책은 세계를 4단계로 나누어 보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한다. 하루 $2 미만으로 사는 극빈층(10억 명), $2-8로 사는 차상위층(30억 명), $8-32로 사는 중산층(20억 명), $32 이상으로 사는 상류층(10억 명)으로 말이다.
부정 본능은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성향이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의 지표들은 꽤 개선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극빈층 비율은 지난 20년간 절반으로 줄었고, 평균 수명은 늘어났으며, 교육 수준도 높아졌다. 문제는 이런 점진적인 발전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극빈층 비율 점진적으로 감소"같은 헤드라인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직선 본능은 현재의 추세가 미래에도 같은 속도로 이어질 것이라 믿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대부분 S자 곡선이나 지수 곡선을 그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율은 점차 둔화되고 있고, 기술 발전 속도는 처음엔 느리다가 급격히 빨라진 뒤 다시 안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저자는 직선적 사고가 불필요한 공포나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본능들은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본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인정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본능의 존재를 인식하고, 데이터를 통해 현실을 더 정확히 보려 노력하라고 제안할 뿐이다.

 

공포와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큰 숫자는 얼마나 강력해 보이는가. 인간은 가끔 큰 숫자를 마주하면 논리보다 느낌으로 이해하려 한다. 숫자와 공포가 인간의 판단을 흔들기도 한다.
공포 본능부터 살펴보자. 비행기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언론이 대서특필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비행기 사고의 수천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에 더 공포심을 느낀다. 이는 비행기 사고가 드물고 극적이어서 언론의 관심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험을 평가할 때 언론 노출도와 실제 위험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러나 비행기 추락 같은 사건은 실제 위험은 작지만 언론 노출이 많아 과대평가되고, 반대로 심장병이나 당뇨병 같은 질병은 실제 위험이 크지만 노출이 적어 과소평가된다.
크기 본능은 단일 수치의 크기에 현혹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연간 1만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를 보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그 수치가 크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전체 인구나 다른 사망 원인과 비교해야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비교와 맥락화를 강조한다. 수치를 관련 데이터와 비교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며,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HIV/AIDS로 인한 사망자가 2004년 190만 명에서 2017년 94만 명으로 감소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공포 본능과 크기 본능은 인간의 판단을 왜곡한다. 인간은 숫자의 크기에 압도되고 공포스러운 사건에 과민반응하면서, 실제로 더 위험하거나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곤 한다. 저자는 "심호흡을 하고 계산기를 꺼내라"라고 조언한다. 세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진짜 위험과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화의 유혹을 이겨내자

운명 본능은 세상의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숙명론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단일 관점 본능은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원인이나 해결책으로 단순화하려는 경향이고, 비난 본능은 문제가 생기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탓하려는 성향이다. 긴급 본능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긴박감에 사로잡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이런 본능들은 모두 세상을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종종 가난한 국가나 이슈가 많은 문화권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그대로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빈곤이나 중동의 갈등을 그들의 '운명'인 양 여긴다. 문제가 생기면 비난할 하나의 대상을 찾기 바쁘고, 복잡한 현상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단순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해 준다. 매년 2%의 성장도 35년이 지나면 두 배가 되듯, 작은 변화도 시간이 지나면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대개 여러 요인이 얽혀 있으며, 그래서 해결책도 다양한 관점에서 모색해야 한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세상을 단순화해서 이해하는 편한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복잡하고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물론 저자는 후자의 길을 권한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에 기반한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책은 무지하고 극단적인 관점들을 교정하려, 세상은 오히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다 보니, 다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듯하다. 특히 기후위기나 불평등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환경운동가들은 저자가 기후변화 문제를 경시하고, 환경운동가들의 호소 방식(공포심 조장)을 비판하는 부분에 불만을 표시했다. 또 데이터에만 지나치게 의존해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일부 비판은 책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걸로 읽힌다. 저자는 세계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축소한다기보다, 공포심 조장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것이다. 공포심을 활용한 설득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방해할 수 있다. 우선 공포는 무력감을 유발한다. "이미 늦었다"는 체념에 빠져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게 되고, 종국에는 문제 해결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또한 공포는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인 결정을 부추긴다. 과장된 경고가 반복되면 신뢰도 잃는다는 점도 있다. 나중에 경고 중 사실이 아닌 것이 드러나면, 대중은 과학적 정보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중을 이탈시킨다. 
저자는 공포 대신 데이터를 근거로 삼자고 제안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만 강조하지 말고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와 긍정적 해결책도 함께 제시하자는 것이다. 기후변화 역시 단순히 공포에 의존하기보다는, 신중하게 분석하고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화석연료 사용 감소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장기적인 계획과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공포심은 이런 체계적 접근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이다.
유용한 책이다. 원시 시대에 형성된 본능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은 흔히 모든 걸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 책은 그런 본능적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을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데이터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균형 감각. 그것이 이 책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