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보는 창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존재인 만큼,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남들도 보고 생각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착각하곤 하지만,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그 방식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프레임은 단순히 보는 방식만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고방식 그 자체다. 지각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선택적으로 제약하는 도구이다. 지도에도 비유할 수 있다. 현실의 복잡한 디테일들을 단순화해서 이해를 돕는 도구라는 점에서다. 프레임이 작용하는 예시를 들어 보자면, 어떤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실패와 좌절에 계속 잠겨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멈칫했다가도 이내 새로운 기회를 여는 순간으로 전환시키는 수도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프레임이다. 세상에 반응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프레임은 단순한 습관이나 편견만은 아니다. 경험, 교육, 문화라든지 여러 요인으로 형성되는 심층적인 사고구조다. 프레임이라는 단어도 아직은 좀 생소한 만큼(아닌가?), 인간은 스스로 어떤 상황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프레임을 인식하고, 적재적소에 유연하게 바꿔 낄 수도 있다면, 개인의 성장과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를 갖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식의 피상적인 변화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근본적인 방식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프레임 재구성은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예시로 레이건이 재선 도전 대선 토론에서 나이 공격을 어떻게 받아쳤는지 살펴보자. 당시 레이건이 만 73세였고,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왜 나이를 따지느냐. 나는 건강하다'라고만 응수했다면 유권자들은 레이건의 나이에 대해 좀 더 주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레이건은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제 상대방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정치적 프레임 재구성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케아도 혁신적인 프레임 전환으로 마케팅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가구 조립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컨셉으로 성공을 거뒀다. 고객이 직접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구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에 충성도도 높였다. 픽사는 실패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꾼 사례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실패를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픽사는 실패를 성공으로 가는 필수 과정으로 재정의했다. 구호만 외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모든 영화는 브레인트러스트라는 회의에서 여섯 번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냈고, 픽사가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토대가 돼 줬다.
경직된 프레임의 위험성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를 보면 광기와 분노에 휩싸인 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진짜 위험성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기계적 이성, 비인간적인 일관성에 있다고 한다. 테러 집단의 일원들은 자신들의 경직된 프레임을 질서나 순수성이라고 믿고, 질서를 수정하는 태도를 나약함으로 여겨 경멸한다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의 프레임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 이들에게 세상은 흑과 백, 선과 악으로만 나뉠 뿐이다. 신념을 고수하는 게 얼마나 쉽겠는가.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잔혹한 짓도 정당화된다. 악행도 철저한 체계 밑에서 이루어진다. 독일 나치의 관료들이 대량 학살을 마치 공장 생산 공정 돌리듯이 처리했던 것처럼. 이런 경직된 프레임들은 자기 강화적이다. 본인들의 프레임과 맞지 않는 현실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느냐, 프레임을 수정하는 대신 현실을 왜곡한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해 버린다. 이런 과정들 속에 이들의 프레임은 더욱 공고해진다. 프레임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곧 배신이 된다. 결국 구성원들은 충성심, 헌신 따위로 포장된 경직된 신념에 매몰되고, 집단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들이 위험한 건 논리를 따르지 않으려고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 나름대로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를 배울 수 있다. 진정한 이성이란 논리적 일관성이 아니라는 것.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고 필요할 때 자신의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 그게 바로 진짜 이성적인 태도이겠다.
진실이라는 단일 프레임
극단주의자들의 경직된 프레임도 위험하지만, 또 위험한 게 있다. 우리 일상에 깊숙이 박혀 있는 '진실'이란 이름의 단일 프레임이다. "우리는 한 핏줄,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자유 시장 경제가 최선의 체제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 체제다" 뭐 이런 말들. 얼핏 보면 그저 상식적이고 건전하고 진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것들조차 단일 프레임으로 굳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이런 위험성을 잘 보여 준다. 15세기엔 신의 진리라는 단일 프레임이, 20세기 소련에선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단일 프레임이 군림했다. 이들은 물론 자신들의 프레임만이 진리라고 확신했고, 다른 관점은 전부 거짓이고 적이라고 몰아붙였다. 결과는?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역사의 실패 사례가 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실수를 적극적으로 반복한다. 정치 체제나 사회 이념 하나로 복잡한 현실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그렇다. 민주주의 같은 당연해 보이는 관념조차 예외는 아니다. 널리 채택된 체제라고 해서 절대적 진리로 여긴다면, 그 한계와 다양한 맥락은 간과하게 된다. 뭐든 간에 그걸 최종적인 해답으로 여겨 멈춘다면 더 나은 가능성을 상상할 기회를 잃는다.
특히 위험한 건 진실이란 단일 프레임이 주는 도덕적 우월감이다. 진실을 안다고 믿는 사람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무지하다거나 악의적이라고 단정 짓기 쉽다. 그러면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해지고, 그런 믿음이 퍼져나가면 사회는 분열된다. 진실이란 프레임이 오히려 진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막게 된다. 핵심은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틀린' 프레임은 단일 프레임뿐이며, 하나의 프레임이 모든 상황에 적합하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큰 착각이라 역설한다. 단일 프레임은 마치 한 방향에서만 비추는 빛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빛은 사물을 드러나게 하지만, 동시에 그림자를 만들어 숨기기도 하지 않는가. 빛을 어디에서 비추느냐에 따라 보이는 진실은 달라진다. 다양한 각도에서 빛을 비춰야 대상을 좀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다원적 프레임의 생산적 가치
다원적 프레임의 가치는 매우 실용적이고 생산적이다. 관용이나 감성의 차원을 넘어선다. 실리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중요하다. 오히려 인간을 단일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주범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일 공산이 크다. 일단 다원적 프레임은 집단의 비이성적 행동을 견제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알다시피, 집단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비이성적이 된다. 예를 들어 모두가 긍정적인 전망에 도취되어 있을 때는 위험 신호를 무시하기 쉽고, 반대로 비관론이 지배할 때는 기회마저 놓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목소리를 낸다면 집단은 조금 더 신중해질 기회가 생긴다. 다양한 프레임이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다원적 프레임이 가진 생산적 가치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여러 각도에서 봐야 한다. 도시 재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경제적 프레임으로는 효율성과 수익성을, 사회적 프레임으로는 원주민의 권리와 공동체 보존을, 문화적 프레임으로는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을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프레임들이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오곤 한다. 또한 다원적 프레임은 혁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 분야의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거나, 기존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는 발상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내곤 한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발견과 혁신들은 서로 다른 프레임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해 왔다.
심적 다양성: 사고방식의 폭을 넓히자
사람들은 말로는 다양성을 환영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익숙한 것에 머무르려는 걸 선호한다. 이미 알고 있는 틀에 맞추는 것이 더 쉽고 안정감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이 본성을 따르며 살고 싶어 한다. 이런 관성을 깨고 심적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의식적으로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심적 다양성을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 다른 사람의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배우기를 제안한다. 새로운 멘탈 모델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전략은 인지적 수렵과 채집이다. 진지한 호기심을 갖고, 자신이 속했던 영역 밖의 시각과 개념을 접해 보면서, 기존의 도구들을 내려놓고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라고 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부한 기존의 개념이나 습관적이던 경로를 의식적으로 제쳐두고, 새로운 해결 방식을 찾아보라고 한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지적 영역으로 가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러한 노력은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기도 한다. 인간의 인지는 마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한 번에 하나의 창문으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다른 창문을 통해 본다면, 즉 여러 프레임을 인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전환할 수 있다면, 세상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프레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능력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실천적 도구가 될 것이다.